백암장은 조선시대에 죽산현에 속했던 장시로, 배관장(排觀場) 혹은 배감장(排甘場)으로 불리었다. 언제 설시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시적고(市糴考) 향시조(鄕市條)에 ‘배관장’이란 이름이 기록상 처음 등장하여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울과 수원·안성 등 경기 지역 상권과 연결되면서 주요 상업기지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세기 전반 장시 개설일을 1·6일로 조정하면서, 죽산의 이실장(3·8일)·부내장(4·9일)과도 하나의 장시권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백암장은 죽산현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에 개편되면서 경기도 용인시로 편입되었으며, 경부선·수려선·안성선 철도의 개설 이후에는 철도와 인접한 도로망에 입지함으로써 건재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38년 당시 백암장에서 거래되었던 물품 거래액은 30만 2737원에 달하였다. 이는 100만 원 이상의 안성장(수원)·성내장(안성)과 같은 대규모 장시는 아니더라도, 백암장이 철도 교통망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은 지역임을 감안할 때, 중소 규모의 장시이지만 지역 상권의 기반이 되었다고 할 만한 수치이다.
해방 이후 백암장은 1970년대 중반 당시 거래액이 1만 7080원, 고정 상인이 40명, 이용자는 600명에 달했다. 20세기에는 전국 최대의 우시장이 들어서는 등 각지에서 의류, 생선, 막걸리, 과일장수 등이 몰려들어 크게 번창하였고, 백암장은 돼지와 소, 쌀시장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산업화 바람에 밀려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최근에는 전통있는 5일장으로 인근 지역에서 많이 찾는다.